연혁
미암사의 연혁
미암사는 부여에서 서쪽 보령 방향으로 거리가 16km쯤 되는데, 부여에서 15분쯤 가다가 구룡천을 따라
40번 국도로 4km 정도 올라가면 왼쪽으로 금북정맥 계향산이라는 아름다운 명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시대 침류왕 때 쌀바위에 공을 들여 쌀도 나오고, 소원도 성취했다 하여 큰 영험이 있으므로 쌀바위
(충남도지방 문화재 제371호) 이름을 따서 쌀미(米), 바위암(岩), 미암사(米岩寺)라 하였다.
쌀바위에서는 원적외선 응용평가센터 시험성적서에 의하면 원적외선이 92.1% 방출됨으로 노화 방지,
중금속 제거, 곰팡이 번식 방지, 신진대사 촉진, 혈액순환 등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미암사는 그 후 몇 차례 전소되어 현대식으로 복원하였으나, 지금은 다시 전통사찰의 형태로 복원 불사 중에
있다. 또한 1998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던 바, 2004년 납월 친견 당시 자연적으로 3과로 자리를 옮겨
증과된 신비한 기적을 일으켰다.
서해 한 시대를 맞이하여 백제권 불교 문화가 중심이 되도록 부동정심의 대원력을 세워 국운융창, 국민화합을
위한 대자대비하신 삼계의 도사 큰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세계 최대 열반상을 2005년 4월 17일 미암사
도량에 전국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원만성취 조성을 회향하게 되어 점산식을 봉행하게되었다.
미암사는 백제불교의 중흥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원성취기도 도량 불교 성지 미암사에 오셔서 악업은 소멸하고, 무량 공덕 쌓으셔서 소원성취합시요.
적멸보궁 세계 최대 열반상 불교 성지 미암사는 성지순례 코스로 가장 적당하며, 찾아오시는 불자님들께
최대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40번 국도로 4km 정도 올라가면 왼쪽으로 금북정맥 계향산이라는 아름다운 명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시대 침류왕 때 쌀바위에 공을 들여 쌀도 나오고, 소원도 성취했다 하여 큰 영험이 있으므로 쌀바위
(충남도지방 문화재 제371호) 이름을 따서 쌀미(米), 바위암(岩), 미암사(米岩寺)라 하였다.
쌀바위에서는 원적외선 응용평가센터 시험성적서에 의하면 원적외선이 92.1% 방출됨으로 노화 방지,
중금속 제거, 곰팡이 번식 방지, 신진대사 촉진, 혈액순환 등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미암사는 그 후 몇 차례 전소되어 현대식으로 복원하였으나, 지금은 다시 전통사찰의 형태로 복원 불사 중에
있다. 또한 1998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던 바, 2004년 납월 친견 당시 자연적으로 3과로 자리를 옮겨
증과된 신비한 기적을 일으켰다.
서해 한 시대를 맞이하여 백제권 불교 문화가 중심이 되도록 부동정심의 대원력을 세워 국운융창, 국민화합을
위한 대자대비하신 삼계의 도사 큰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세계 최대 열반상을 2005년 4월 17일 미암사
도량에 전국사부대중의 동참으로 원만성취 조성을 회향하게 되어 점산식을 봉행하게되었다.
미암사는 백제불교의 중흥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원성취기도 도량 불교 성지 미암사에 오셔서 악업은 소멸하고, 무량 공덕 쌓으셔서 소원성취합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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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사의 어원
미(米)-(SALI) 비장 기상(秘藏記上)에 “천축(天竺)에서 미(米:쌀낱)를 사리(舍利)라 한다.
불사리(佛舍利)가 미(米)와 같으므로 이렇게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천축 은 인도(印度)의 옛 이름이다.
범어잡명(梵語雜名)에 “도범어사리(稻梵語舍利)” 라고 기록(記錄) 되어 있다.
상기(上記)의 모든 기록으로 미암사의 “미(米)”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의미(意味)하고 사리로 뭉쳐진 미암(米岩)은 그 서기(瑞氣)로 인하여 영롱(玲瓏)하고,
사리의 신비한 영험(靈驗)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불사리(佛舍利)가 미(米)와 같으므로 이렇게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천축 은 인도(印度)의 옛 이름이다.
범어잡명(梵語雜名)에 “도범어사리(稻梵語舍利)” 라고 기록(記錄) 되어 있다.
상기(上記)의 모든 기록으로 미암사의 “미(米)”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의미(意味)하고 사리로 뭉쳐진 미암(米岩)은 그 서기(瑞氣)로 인하여 영롱(玲瓏)하고,
사리의 신비한 영험(靈驗)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미암사의 약사
백제 무왕(武王) 4년(602년) 관륵(觀勒)이 창건(創建)하였다.
쌀바위전에 무물던 백제 삼론학자(三論學者) 관륵이 일본국에 건너가 백제불교를 일본에 전파하여
역법(歷法), 천문둔갑, 방술(方術)들의 일본 승강 (僧鋼)의 초석(礎石)을 닦았다.
의자왕 20년(661년)에 당라 연합곤의 백제를 침범하면서 미암사를 전소 (全燒)시켜 버렸다.
이때 대웅전(大雄殿)에 봉안(奉安)되었던 금동관세음보살상(金銅觀音菩薩立像)을 인근(隣近)의 야산에
매장(埋葬)하였다고 하나 현재 문헌(文獻)을 찾을길이 없고 그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찾지 못하고 있다.
무학대사 (고려 충숙왕 13년 (1372)에 삼기군에서 출생)는 용문산 혜명스님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묘향산, 금강산, 계룡산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다가, 서산 영암사에서 나옹 스님을 만나 수년간 머물렀다.
나옹스님의 손을 잡고 이곳에 따라왔다가 쌀바위를 면벽하고, 100일간 용맹 정진 끝에 무아(無我)에 들어
세상은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불교 교화에 나섰다.
이때 쌀바위를 떠나면서 성불 기념으로 적송(赤松) 두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그 단아한 모습은 소진되어
볼 수가 없고 자손이라 여겨지는 적송들이 계향산 곳곳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 후 1356년(공민왕 5년)에
나옹 스님은 왕사(王師)가 되어서 무학을 수좌(首座)로 앉히려 했지만 끝내 거절하였다.
이태조 원년(1392년)에 태조에 의해 송경에 가서 왕사가 되었고, 이조(李朝) 태종(太宗) 5년)(1405년)에
금강산 금장암에서 입적(入寂) 하였다.
이후에도 수차례 화재(火災)로 인하여 전부 또는 일부가 소실(燒失) 되어 개, 보수하였고,
근세에는 1903는 윤하영 스님이 수도(修道) 중에도 화재로 전소(全燒) 되어 10평 정도의
법당(琺堂)을 중건(重建) 하여 수행(修行) 중 1925년 열반(涅搬) 하였으며,
그 후 여러 스님이 묶어갔고, 이후 이주희 스님이 입산(入山) 하여 1992년까지 수도하였다.
1992년 2월 28일부터 미암사 조실 석만청 스님께서 백제불교의 중흥을 위하여
현재까지 대작 불사를 일으키며 주석하고 계신다.
쌀바위전에 무물던 백제 삼론학자(三論學者) 관륵이 일본국에 건너가 백제불교를 일본에 전파하여
역법(歷法), 천문둔갑, 방술(方術)들의 일본 승강 (僧鋼)의 초석(礎石)을 닦았다.
의자왕 20년(661년)에 당라 연합곤의 백제를 침범하면서 미암사를 전소 (全燒)시켜 버렸다.
이때 대웅전(大雄殿)에 봉안(奉安)되었던 금동관세음보살상(金銅觀音菩薩立像)을 인근(隣近)의 야산에
매장(埋葬)하였다고 하나 현재 문헌(文獻)을 찾을길이 없고 그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찾지 못하고 있다.
무학대사 (고려 충숙왕 13년 (1372)에 삼기군에서 출생)는 용문산 혜명스님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묘향산, 금강산, 계룡산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다가, 서산 영암사에서 나옹 스님을 만나 수년간 머물렀다.
나옹스님의 손을 잡고 이곳에 따라왔다가 쌀바위를 면벽하고, 100일간 용맹 정진 끝에 무아(無我)에 들어
세상은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불교 교화에 나섰다.
이때 쌀바위를 떠나면서 성불 기념으로 적송(赤松) 두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그 단아한 모습은 소진되어
볼 수가 없고 자손이라 여겨지는 적송들이 계향산 곳곳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 후 1356년(공민왕 5년)에
나옹 스님은 왕사(王師)가 되어서 무학을 수좌(首座)로 앉히려 했지만 끝내 거절하였다.
이태조 원년(1392년)에 태조에 의해 송경에 가서 왕사가 되었고, 이조(李朝) 태종(太宗) 5년)(1405년)에
금강산 금장암에서 입적(入寂) 하였다.
이후에도 수차례 화재(火災)로 인하여 전부 또는 일부가 소실(燒失) 되어 개, 보수하였고,
근세에는 1903는 윤하영 스님이 수도(修道) 중에도 화재로 전소(全燒) 되어 10평 정도의
법당(琺堂)을 중건(重建) 하여 수행(修行) 중 1925년 열반(涅搬) 하였으며,
그 후 여러 스님이 묶어갔고, 이후 이주희 스님이 입산(入山) 하여 1992년까지 수도하였다.
1992년 2월 28일부터 미암사 조실 석만청 스님께서 백제불교의 중흥을 위하여
현재까지 대작 불사를 일으키며 주석하고 계신다.